한국은 적어도 5000년 이상 우리말을 써 왔으며, 이 말을 통해 우리 겨레만의 고유한 문화와 사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말 속에는 우리 겨레의 문화적 특성이 잘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의식구조, 즉 세계관이 나타나 있습니다.
독일의 언어학자 홈볼트는 '언어는 에르곤이 아니라 에네르게이아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언어가 단순히 사회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적 기능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사용자 개인의 됨됨이 및 ㅡㄱ 언어 공동체의 문화를 만드는 적극적 기능도 갖고 있음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겨레는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반도라는 한 지역 내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으며, 한국어라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는 아주 다른 독특한 언어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한국어 속에는 우리의 전통 문화와 겨레 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속담, 격언, 금기어, 친족어, 성별 표현, 계절과 절기 표현 등에는 우리 겨레의 생활 양식과 문화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속담
흔히 속담을 '말의 꽃, 민중이 낳은 생활의 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속담 속에 민중들의 진솔한 삶과 문화, 그리고 지혜가 담겨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속담은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겨레 모두의 공감을 통해 생겨난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전통문화, 그리고 시대상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깨우치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속담은 화자의 의도를 비유적, 우회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식이 많으면 걱정과 근심이 많기 마련임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고 나무에 빗대어 나타냄으로써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잘 것 없다거나 너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여러 말보다는 '새 발의 피다.'라는 한 마디가 더 효과적입니다. '냉수 먹고 이빨 쑤신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호세를 부리는 것을 비꼬는 말이며,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 잡는다.'는 은혜를 모르는 배신 행위를,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는 끼리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 '속담'은 상황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사태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임지룡 외, 학교 문법과 문법 교육, 박이정)
2. 친족 표현
한국은 씨족 단위로 한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오래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다른 언어에 비해 친족어휘가 매우 발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아빠/부친, 어머니/엄마/모친, 할아버지/조부, 할머니/조모, 고조할아버지/고조부, 고조할머니/고조모 등에서처럼 고유어 계열과 한자어 계열이 있었으며,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구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항렬(行列)에 따라 위와 아래를 분명히 나누었습니다.
한편, '어버이/부모, 조부모, 형제, 자매, 형제자매, 아우/동생' 등과 같이 둘을 아우르는 말이 있으며, '오빠, 누나'처럼 부르는 이의 성별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 있고, '부자간, 모자간, 모녀간, 숙질간, 옹서간, 장인과 사위간' 등과 깉이 '-간(間)'이란 접미사를 붙여서 서로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또한 친가냐 외가냐를 구별하기도 하는데, '외할아버지/외조부, 외할머니/외조모, 외숙모/외삼촌, 이모/이모부'처럼 '외(外)-'라는 접사를 붙임으로써 출가외인, 즉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의 부계문화를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집을 온 여성은 남편의 친인척을 '시(媤)아버지-시어머니-시부모, 시조부-시조모, 시숙부-시숙모, 시백부-시백모, 시동생'처럼 접사 '시(媤)-'를 붙이고, 장가간 남성은 아내의 친인척을 '처조부-처조모, 처남-처남댁, 처숙부-처숙모, 처조카-처질녀, 처남-처형'처럼 접사 '처( 妻)-'를 붙임으로써 친가와 처가, 시가를 구별했는데, 이것도 결국은 부계 문화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친족 어휘가 발달되어 있는 것은 혈연을 중심으로 한 씨족 단위의 집단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씨족 혹은 대가족 단위의 생활양식이 개인 및 소가족 단위로 재편되면서 친족 용어를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고, 또 자녀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친족관계 자체가 잘 만들어지지 않음으로써, 정교하게 발달되었던 친족용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임지룡 외, 학교 문법과 문법 교육, 박이정)
3. 계절 표현
한국말에는 절기와 계절을 나타내는 어휘와 표현이 매우 많은데, 이는 우리 겨레가 전통적으로 농경 문화 속에 살았음을 나타냅니다. 절기(節氣)는 시령 혹은 절후라고도 하는데, 음력에 따라 한 해를 스물 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으로 24절기가 있으며,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있는데, 이 절기와 계절은 모두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계절 이름은 고유어로 된 것과 한자어로 된 것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고유어이며, '춘계-하계-추계-동계'는 한자어입니다. 여기에 접두사를 붙여 계절을 좀 더 세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고유어, 한자어, 한자어+고유어'의 세 계열의 말이 있습니다. '첫봄-첫여름-첫가을-첫겨울/ 한봄-한여름-한겨울/ 늦봄-늦여름-늦가을-늦겨울'은 고유어 계통의 단어인데, 접사를 붙여서 계절을 더 자세히 나누었습니다. 그 외, 절기에는 24절기가 있는데, 봄과 관련된 절기로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등이 있으며, 여름과 관련 있는 절기는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과 관련 있는 것으로는 '백로, 추분, 한로, 입동, 소설' 등이 있습니다. 겨울과 관련된 것으로는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등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계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계절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계절적 특성은 농사일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대문에 농경사회에서는 항상 이 절기의 흐름에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출처 - 임지룡 외, 학교 문법과 문법 교육, 박이정)